시사

1919년 1월 21일 고종이 죽었을 때, 대중은 비로소 왕조가 끝났음을 실감했다. 나라는 오래 전에 망했고 그는 더 이상 왕이 아니었으나 그가 죽고서야 마음속 '조선'은 사라졌다. 그 해 2월 8일 일본 유학생들의 독립선언이나 3월 1일 전국에서 일어난 독립운동은 대중이 드디어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30년 후인 1949년 6월 26일 김구가 죽었을 때, 대중은 비로소 독립운동의 시대가 끝났음을 실감했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수년이 흘렀고 이미 한반도 남북에 각각의 정부가 수립되었음에도 그가 죽고서야 마음속 '통일된 조국'이 미련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 해 중국에 공산정권이 들어서자 한반도는 미국, 소련, 중국이 각축하는 체제경쟁의 상징이 되었다.

30년 후인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가 죽었을 때, 대중들은 비로소 독재시대가 끝났음을 실감했다. 그 전 해인 1978년 총선에서 야당인 신민당이 득표율에서 여당인 공화당을 앞섰고, 1979년에는 YH 사태, 부마항쟁 등 철권통치의 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으나 그가 죽고서야 마음속 '두려움'이 사라졌다. 그 해 12월 12일 '신군부'로 불린 일군의 군인들이 쿠데타를 일으키고 이듬해 5월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면서 권력을 장악하자 박정희 정권에 맞서 싸우면서 성장한 민주화 세력은 망설임 없이 투쟁에 나섰다.

▲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로 '민주화 시대'도 막을 내렸다. 2039년,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상징하는 '새로운 지도자'를 추모할 것이다. ⓒ프레시안(그림=손문상)
30년 후인 2009년 김대중이 죽었을 때, 대중들은 비로소 민주화의 시대가 끝났음을 실감했다. 민주화운동 출신의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이 연속으로 대통령이 되고, 선거를 통한 평화적 정권 교체가 당연한 듯 자리 잡았지만 그가 죽고서야 마음속 '민주화 시대'는 막을 내렸다. 올 해 예상치 못하게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을 잃었고, 우리는 여전히 '민주주의'의 후퇴를 염려하지만, 이제 또 한 세대가 가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30년은 한 세대다. 어린 아이가 성장하여 부모 일을 계승할 때까지의 기간을 30년쯤으로 보는 것이다. 또 같은 시대에 살면서 공통의 의식을 가지는 비슷한 연령층의 사람 전체를 한 세대라 부른다. 그러니까 한 세대의 사람들은 공통의 경험, 추억, 인식, 인물, 성취 등 '세대의 역사'가 있다.

공교롭게도 우리는 한 세대를 거칠 때마다 '신화'를 만들어 왔다. 30여 년 만에 '독립과 건국'을 했고, 그 다음 세대는 '한강의 기적'을, 그 다음 세대는 '민주화'를 쟁취했다. 30년의 한 세대마다 이처럼 찬란한 성취를 이룬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가히 기적과 신화, 그리고 영웅의 나라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시대적 소임을 다 마치고 땅으로 돌아가 이승만, 박정희와 나란히 묻혔다. 또 그렇게 한 세대는 가는 것이다. 마지막 가는 길에 그는 '행동', '화해', '평화'의 메시지를 다음 세대에 남겼다. 지금은 구시대의 마지막 밤이자 새로운 시대의 전야다. 어둠이 물러가고 새아침이 오고 있다.

30년 후인 2039년 우리는 또 한 명의 위대한 지도자를 잃을 수 있다. 그가 누구일지는 알 수 없으나 지난 세대의 지도자들이 그랬듯 다음 세대의 지도자도 '위대한 유산'을 우리에게 남길 것이다. 다음 세대는 '한반도의 평화'를 이루는 세대일 수도 있고, '선진 강국의 시대'를 여는 세대일 수도 있다.

물론 위대한 나라와 위대한 지도자는 '위대한 국민'이 만든다. 앞서 언급한 세 지도자가 각각 독립운동, 산업화, 민주화를 대표하는 지도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것들을 염원하며 만들었던 국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제 '새로운 세대'는 그들이 지향하는 가치를 현실로 만들고, 또 거기에 맞춤한 '새로운 지도자'를 만들어야 할 과제를 안게 됐다.

30년마다 우리는 위대한 지도자를 잃었지만 그들의 죽음은 그들이 '역사적 소임'을 훌륭히 다 마쳤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는 것이다. 한 시대를 마감하는 국장을 보면서 전 세대의 도전정신, 용기, 헌신, 업적을 뛰어넘는 '위대한 지도자'와 '위대한 세대'의 등장을 희망의 두근거림으로 기다린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 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기사